꿈을 꿨습니다.


온통 갈기갈기 찢어져 입은 게 아니라 걸쳤다고 해야 할 만큼 먼지 잔뜩 뒤집어 쓴 허연 옷을 입고 그들은 내 앞에 서서 무서운 눈초리로 나즈막이 말했습니다.


“우린 동학농민이다.”

▲ 서울로 가는 전봉준 ⓒ 엠파스 검색


팔 하나 없는 사람이 태반이고 불에 그을려 차마 눈 뜨고 빤히 바라볼 수 없을만큼 온 몸이 뭉그러진 사람들이 또 다시 나타났습니다.


“우린 4.3 제주다.”

▲ 4.3 ⓒ 엠파스 검색


머리 한 쪽이 무너져 내렸고 가슴에 구멍이 뚫린 어른들과 교련복을 입은 학생들과 열살 밖에는 안 보이는 아이가 한 쪽 다리를 질질 끌며 이렇게 읍조렸습니다.


“우린 5.18 광주다.”


▲5.18 ⓒ 엠파스 검색


비행기 한 대가 유령처럼 스쳐 지나갔고, 불기둥 모양의 사람이 끝없는 밑바닥으로 추락해 갔으며 건장한 사내들에 둘러싸인 가녀린 청년 하나가 숨을 못 쉬고 나동그라졌고, 축포라도 쏘아 올리는 듯 ‘펑펑’ 소리를 내며 흰 연기를 내뿜는 최루탄들이 날아다녔습니다.


흠뻑 젖은 베개를 딛고 일어나 앉아 멍하니 까만 밤하늘을 봤습니다. 거기에 그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빚을 갚아라, 이눔아!”


지금껏 나는 이만큼 살을 찢기는, 정신을 강탈당하는, 피고름을 짜내는 고통을 감내해서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만들어주신 꽃세상에 살면서 그저 부채의식만 갖고 살아온 것입니다.


“난 뭐했나.”

“난 뭐였나.”

“난 뭘 할 것인가.”


당신이 나와 같은 꿈을 꿨다면 당신은 뭘 해야 할 것 같습니까?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나도 찢겨지고, 강탈당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살라고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원하는 걸까요?


그 고통을 당해놓고도 우리가 또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싸워온 보람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여.


내가 참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참여시키는 것이 지금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아주 커다란 바람일겁니다.


착하디 착한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그저 ‘참여’해서 세상을 바꾸라는 주문 밖에는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이제, 빚 갚겠습니다. 당신이 남겨주신 이 꽃세상보다 더 예쁜 세상,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주어야겠으니, 님들께서 말씀하시는 그 빚 갚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님들께서 당하신 고통과 허망함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우린 할 수 있고 해야만 합니다.


사랑합니다.



ⓒ 해질녘바람



Posted by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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