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밥값은 내가 냈소, 걱정말고 일 잘하슈
“의원님, 꼭 드릴 말씀이 있는데…….”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저를 불러내는 분들 앞에선 일단 가슴이 뜨끔합니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해도, 당원들을 만나기전 문득 걱정이 앞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총선사례는 왜 없는 거요?”
“취직 부탁 하나 들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거요?”
“‘실탄’ 만 좀 주면 내가 확실히 한번 일해보겠소.”
“조직은 곧 돈인데 말만으로 내년 자치제 선거가 거저 치러지는 줄 아쇼?” 등등 갖가지 불만이 쏟아져 나옵니다. 깨끗한 것도 좋지만 ‘맑은 물에는 고기가 안 산다’며 개탄 아닌 읍소를 하기도 하십니다.
수긍도 가고 심정적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곤혹스러운 것은 달라진 정치풍토에서 이런 질책과 불만에 대해 실제적으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는 현실입니다.
▲ 4.2 전당대회장의 노웅래 의원 ⓒ 노웅래 홈페이지
“이제는 정치가 달라졌다”, “선거법상 어쩔 수 없다”, “이제 정치의 주인은 국민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해 달라”고 간곡히 말씀드리지만 이미 불만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공허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을 듯싶습니다.
우리는 분명 ‘깨끗한 정치,’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을 일구어나가기 위해 ‘기간당원제’를 도입하고 ‘당원협의회’를 지구당 대신 만들고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가 더 이상 극소수 권력자들의 손에 놀아나고 일방적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몸 따로 마음 따로’처럼 과도기적인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당원들에게도 새로운 정치풍토가 낯설고 적응하는데 어려움도 있으시겠지만, 저희 국회의원들도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같은 어려움을 체험하고 있으며, 때로는 참 몰인정스럽고 유난스럽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풍토를 조성하고 국민도 불편하고 정치인도 불편하게 만든 현행 선거법. 그래서 선거법을 완화하자는 얘기가 꾸준히 나오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현행 선거법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분과 취지에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와 공감대를 얻어 출발한 선거법이라면,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을 때까지 기꺼이 감내하고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몸은 익숙한 예전 옷에 감긴 채 입으로 내세우는 구호만 다르다면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꼭 필요하다면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러다 선거를 앞장서서 도와줬던 분들이 모두 제 곁을 떠나는 게 아닐까, 솔직히 걱정도 됩니다. 저의 정치소신과 인간성만 믿고 저를 따라달라고 했다가 나만 왕따되는 게 아닐까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들이 좋다하는 직장 박차고 위험을 무릅쓰고 정치에 입문할 때의 초심을 결코 져버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역구민과 국민들께 “희망을 주는 정치”, “더 이상 군림하지 않고 ‘공공서비스’로 자리매김하는 정치”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뜻이 꿈이 아닌 현실로 자리 잡는 그 날까지 인내할 것은 인내하고, 힘들어도 제가 의당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알고 설득하며, 보듬고 아우르면서 가야겠다는 마음, 이 글을 쓰는 이 밤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쉽지 않을 줄 압니다. 그러나 삼천 원짜리 허술한 국밥으로 식사하시다가 저를 알아보시고 식사도 안 끝내신 채 카운터에 가셔서 “내 밥값은 내가 냈소. 걱정 말고 일이나 잘하슈!” 하시던 초면의 생선장수 할머니, 꼭 만나고 싶다고 청하면서도 식사시간은 몇 번을 마다하던 젊은이, 이들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당당하게, 의연하게 가렵니다.
한결같이 일관된 모습으로 저의 뜻을 성심성의로, 지극정성으로 실천한다면 다른 분들도 언젠가는 저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자신감 있게 나아가렵니다.
2005년4월11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노웅래